유전학

크리스퍼 가위와 특허 전쟁

Jin_Omics 2025. 3. 23. 10:06

누가 과학을 발견하고, 누가 그 권리를 가져가는가


1. 크리스퍼 가위란?

크리스퍼(CRISPR)는 원래 박테리아의 면역 시스템에서 유래한 메커니즘이다.

바이러스가 침입했을 때, 그 유전 정보를 기억하고 다음에 같은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잘라내어 방어하는 방식이다. 이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유전자 편집 기술이 바로 크리스퍼-Cas9, 일명 크리스퍼 가위이다.

이 기술은 기존의 유전자 편집 기술보다 훨씬 간단하고 정확하며 비용도 적게 든다는 점에서 큰 혁신으로 평가받는다. 원하는 DNA 서열을 정확하게 잘라내고 편집할 수 있기 때문에, 유전 질환 치료, 작물 개량, 암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가능성이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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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크리스퍼 가위를 둘러싼 특허 전쟁

하지만 이 혁신적인 기술을 둘러싸고는 치열한 특허 전쟁이 벌어졌다.

핵심 인물은 두 팀이다.

  • 제니퍼 다우드나 &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크리스퍼-Cas9을 처음으로 제안하고, 이를 시험관 내(in vitro) 환경에서 세균 DNA에 적용하는 실험을 발표했다.
  • 펭 장(장 펭): 위 논문 발표 직후, 해당 기술을 진핵세포(사람, 동물 세포)에 적용하는 실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빠르게 특허를 출원했다.

여기서 논란이 발생했다.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한 다우드나 팀과, 이를 빠르게 실용화해 특허를 선점한 장 펭 팀 중 누가 정당한 권리를 가져야 하는가라는 문제다.

미국 특허청에서는 최종적으로 브로드 연구소(장 펭 팀)의 손을 들어줬다. 기술을 진핵세포에 적용한 방식이 기존 연구로부터 자명하게 이어진다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써 상업적 권리는 장 펭 팀이 갖게 되었고, 관련 기업들도 이쪽과 라이선스를 체결했다.


3. 학계 vs 산업계: 엇갈린 ‘인정’

재미있는 점은, 이 특허 전쟁에서 학계와 산업계가 서로 다른 쪽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 노벨 화학상(2020)은 다우드나와 샤르팡티에에게 돌아갔다.
    과학사적으로 크리스퍼-Cas9의 발견 자체가 중요하다고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 반면 산업계에서는 브로드 연구소(장 펭 팀)가 보유한 특허를 중심으로 기술 이전과 상업화가 이뤄지고 있다.

즉, ‘과학적 발견’과 ‘실용화·특허화’는 전혀 다른 트랙 위에 존재하며, 각각의 세계에서 중요한 기준이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4. 개인적인 생각

다우드나와 샤르팡티에가 세운 이론을 바탕으로, 장 펭이 빠르게 진핵세포에서의 실험을 성공시키고 특허까지 선점한 흐름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과학적 아이디어를 제안한 사람과, 그것을 실용화해낸 사람이 다를 때, 그 가치는 어떻게 나뉘어야 할까?"

 

다우드나와 샤르팡티에 입장에서 보면 너무 억울했을 것 같다. 자신들이 이미 해당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고, 특허도 먼저 신청한 상태였는데, 논문을 발표한 직후 장 펭이 그 내용을 보고 빠르게 진핵세포에 적용한 후 특허를 등록했기 때문이다. ‘내가 세운 이론을 보고 누군가가 더 빠르게 움직여서 실용화하고 특허까지 가져갔다’는 상황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장 펭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의 명분은 있다. 아무리 기존 이론을 참고했다 하더라도, 진핵세포에 적용하는 구체적인 실험 방법과 기술을 직접 정립해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그 연구 결과에 대해 상세한 특허 문서를 작성해 제출했고, 그것이 제도적으로 인정받았다.


특히 크리스퍼 가위는 의학·생명과학·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십 년간 활용될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이권이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이번 특허 싸움이 단순한 ‘공’의 문제가 아니라, 엄청난 미래 가치를 둘러싼 경쟁이 되었던 것 같다.

 

이렇게 양측의 입장을 모두 생각해보면, ‘누가 진짜 특허의 주인인가’에 대한 답은 쉽게 내릴 수 없는 문제다. 오히려 지금처럼 상업적인 측면에서는 장 펭이, 학문적 공로로는 다우드나와 샤르팡티에가 인정받은 결과가 어떤 면에서는 현실적인 타협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다우드나와 샤르팡티에 입장에서 보면, 끝까지 억울한 마음이 남을 수 있을 것 같다.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 과학에서는 ‘누가 먼저 착안했는가’보다 ‘누가 먼저 실현하고, 제도화했는가’가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번 사례는 단순히 학문적인 기여를 넘어, 연구 결과를 어떻게 사회에 연결시키고 보호할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줬다.

그래서 나 역시 앞으로 연구를 하게 된다면, 단지 좋은 데이터를 얻고 논문을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결과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쓰일 수 있을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 연구를 어떻게 지켜야 할지를 함께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연구의 본질은 ‘공유’에 있지만, 그 공유가 더 많은 이들에게 이롭게 작동하기 위해선 ‘보호’ 또한 필요하다는 점.
이 둘 사이의 균형을 고민하는 연구자가 되어야겠다.


 

📚 참고 및 추천
이 글은 K-MOOC에서 들은 이화여자대학교 이기현 교수님의 ‘크리스퍼 유전자 조작이 바꿀 우리의 미래’ 강의를 바탕으로 내용을 정리하고,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여 작성한 것이다. 
강의는 크리스퍼 기술의 기본 개념부터 사회적·윤리적 쟁점, 그리고 과학계의 다양한 사례들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어 정말 유익했고, 입문자에게도 부담 없이 추천드릴 수 있는 강의였다.

 

 

https://www.kmooc.kr/view/course/detail/15312?tm=20250322230343